영상 보기1281년 11월, 바그다드에 있는 한 교회의 주교들이 새 총대주교를 서임했는데, 뜻밖의 인물이었습니다. 마르코스는 서른대여섯 살로, 중국 북쪽 변방에 사는 튀르크계 민족인 옹구트 사이에서 자랐습니다. 그의 전기에 따르면 그는 선거인들에게 자신은 배운 것이 모자라고 교회가 기도할 때 쓰는 언어인 시리아어를 겨우 다룰 뿐이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그를 뽑았고, 그는 야발라하 3세가 되었습니다. 이번 주 영상은 그가 어떻게 그 자리에 이르렀는지, 그리고 그를 데려간 스승의 이야기를 따라갑니다.
길을 따라간 교회
그가 이끌게 될 교회는 스스로를 동방교회라고 불렀습니다. 바깥 사람들은 5세기의 한 주교를 정죄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 교회에 네스토리우스파라는 딱지를 붙였지만, 지금의 학자들은 그 딱지가 오해를 부른다고 봅니다. 총대주교들은 수백 년 동안 바그다드에 자리 잡았고, 오래된 아람어의 한 형태인 시리아어 기도문은 성직자들과 함께 아시아 깊숙이까지 퍼져 나갔습니다.
1018년에는 사마르칸트에 대주교, 곧 한 관구를 맡은 상급 주교가 있었고, 12세기 후반부터는 카슈가르에도 관구가 있었습니다. 알말리크 근처 일리 계곡의 한 묘지에는 시리아 문자를 새긴 비석이 지금도 남아 있는데, 대부분 1200년대와 1300년대의 것입니다. 훨씬 더 동쪽에서는 알로펜이 이끈 선교단이 635년에 중국에 닿았고, 781년에 장안에 세워진 비석이 그 일을 기록했으며, 이 비석은 845년에 땅에 묻혔습니다. 몽골 치하에서 교회는 중국으로 돌아와 번성했지만 대부분은 외국인들 사이에서였습니다. 1200년대에 교회는 북쪽에 두 개의 관구를 두었고, 그중 하나는 황허가 북쪽으로 크게 굽이치는 곳의 옹구트 땅을 아울렀습니다.
교회에는 궁정에도 벗이 있었습니다. 연대기 작가들은 1007년경 눈보라 속에서 길을 잃은 한 칸이 세례를 받겠다고 약속한 뒤 초원의 케레이트가 그리스도교도가 되었다고 전합니다. 칭기즈 칸은 1203년에 이들을 꺾었지만 그 지배 가문과 혼인으로 맺어졌습니다. 이 교회의 케레이트 공주 소르칵타니 베키는 그의 아들 톨루이에게 시집가 네 아들을 길렀는데, 뭉케와 쿠빌라이와 훌라구를 포함한 이들이 모두 권력을 잡았습니다. 훌라구의 아내 도쿠즈 카툰도 그리스도교도 케레이트 사람이었습니다. 그래도 근래의 한 개관은 제국 전체로 보면 그리스도교가 결코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못했다고 주의를 줍니다.
은수자와 제자
랍반 사우마는 1220년대에, 지금의 베이징 안이나 그 근처에서 태어났는데, 당시 그곳은 금나라의 수도 중도였습니다. 중국 쪽 기록은 그의 집안을 옹구트라 부르고, 연대기 작가 바르 헤브라이우스는 그를 위구르 사람이라고 적습니다. 그는 수도자의 삶을 택해 7년 동안 독방에 갇혀 지낸 뒤, 도시에서 하루 거리의 동굴로 옮겼고, 사람들이 그의 말을 들으러 찾아왔습니다. 옹구트의 마을 코샹(Koshang)에서 한 부제의 막내아들로 태어난 마르코스는 그를 찾아 열닷새를 걸어갔습니다. 사우마는 그를 물리치려 했다가 끝내 받아들였습니다.
1275년경 두 사람은 예루살렘에서 기도하려고 길을 떠났습니다. 그들은 탕구트 땅을 지나고 큰 사막을 끼고 돌아 호탄에 이르렀는데, 두 달 길에 단물이 나는 곳은 겨우 여드레뿐이었습니다. 호탄 일대에서는 전투가 한창이었고 카슈가르는 약탈당한 뒤였으며, 그들은 탈라스 계곡에 있는 카이두 공의 진영을 지나 호라산에 이르렀습니다. 총대주교 데냐는 페르시아 북서부의 마라가에서 두 사람을 따뜻하게 맞았습니다.
예루살렘은 끝내 가지 못했습니다. 아르메니아를 거치는 길을 시도했지만 그루지야에서 살인과 강도로 길이 막혔다는 소식을 듣고 단념했습니다. 데냐는 마르코스를 카타이와 옹의 대주교로 임명했고, 새 이름 야발라하는 제단에 놓은 쪽지 가운데 하나를 뽑는 제비로 정해졌습니다. 전투로 고향길이 막히자 두 사람은 모술 근처의 한 수도원에서 약 2년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다 1281년 초에 데냐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외부인이 이긴 까닭
선거인들, 곧 주교와 귀족과 의사들이 마르코스를 원한 데는 실제적인 이유가 있었습니다. 페르시아와 이라크는 몽골 칸들의 지배 아래 있었고, 그들의 관습과 언어를 그만큼 이해하는 사람이 달리 없었습니다. 일 칸 아바카는 그를 승인하고, 뭉케가 예전에 총대주교들에게 내린 인장을 넘겨주었습니다.
한동안은 그것이 효과를 보았습니다. 1287년에 아바카의 아들 아르군은 사우마를 유럽의 왕들에게 보냈는데, 이 여정은 우리 영상 가운데 또 한 편인 「지도의 끝」에서 다루었습니다. 돌아온 사우마는 마라가에 교회를 세웠고, 1294년 1월 바그다드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더 힘든 세월이 뒤따랐습니다. 그리스도교도로 자란 테구데르는 무슬림이 되어 총대주교 자신의 주교들 가운데서 나온 고발자들의 말을 듣고 야발라하를 약 40일 동안 가두었고, 테구데르의 어머니 쿠투이 카툰이 그를 빼내는 것을 도왔습니다. 1295년에 에미르 나우루즈는 가잔을 지지하는 대가로 가잔의 이슬람 개종을 얻어 냈는데, 그가 교회와 불교 사원을 부수거나 모스크로 바꾸라고 명령했고, 마라가의 군중은 총대주교를 붙잡아 몸값을 요구했습니다. 그 물결은 1년 안에 가라앉았지만, 교회의 역사에 따르면 1310년에는 에르빌 성채에 포위되어 있던 그리스도교도들이 성이 함락될 때 죽임을 당했습니다. 야발라하는 36년 동안 총대주교로 있다가 1317년 11월 마라가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기록이 전해 줄 수 있는 것
이 개인적인 이야기는 거의 전부가 한 권의 책에 기대고 있습니다. 두 수도자의 일생을 적은 시리아어 책으로, 오늘날에는 1928년의 버지 번역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나이와 연대가 늘 맞아떨어지지는 않아서 영상에서는 어림수로 말합니다. 물질적인 흔적이 도움이 됩니다. 올론 수메에서는 시리아어, 한자, 위구르 문자로 새긴 묘비가 나왔고, 옹구트 땅에서는 작은 청동 십자가가 나왔는데, 약 1000점이 지금 홍콩 대학에 있으며 일부는 그리스도교와 불교의 도안이 섞여 있습니다. 한 추산에 따르면 1400년대 초에 이 교회의 주교가 남아 있던 도시는 단 일곱 곳이었습니다.
영상은 이 이름들에 얼굴과 지도를 입혀 보여 줍니다. 더 깊이 들어가고 싶은 분을 위해 제가 의지한 자료를 아래에 적어 두었습니다.
출처
- Budge, “The Monks of Kublai Khan, Emperor of China” (1928), 시리아어 『Mar Yahballaha와 Rabban Sauma의 역사』의 번역 (은수자, 서쪽으로 가는 길, 제비뽑기, 1281년의 선출)
- Budge, 같은 책, archive.org 판 (뒷부분의 장들: 테구데르, 나우루즈, 에르빌, 야발라하의 죽음)
- 위키백과, “Yahballaha III” (1245년경 출생, 1281년 11월 서임, 1317년 사망)
- 위키백과, “Rabban Bar Sauma” (1220년대 출생, 옹구트 또는 위구르 사람, 1294년 바그다드에서 사망)
- 위키백과, “Church of the East” (명칭, ‘네스토리우스파’라는 딱지, 시리아어 전례)
- 위키백과, “Dioceses of the Church of the East to 1318” (1018년까지의 사마르칸트, 카슈가르, 탕구트, 카타이와 옹)
- 위키백과, “Church of the East in China” (635년의 알로펜, 몽골 치하에서의 복귀)
- 위키백과, “Nestorian Stele” (781년 건립, 845년 매몰)
- 위키백과, “Syriac language”
- 위키백과, “Ongud” (두 개의 수도, 알라쿠시와 칭기즈 칸, 1205년)
- 위키백과, “Keraites” (눈보라 속 개종 이야기, 1203년의 패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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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키백과, “Doquz Khatun”
- 위키백과, “Denha I” (마라가의 총대주교, 1281년 사망)
- 위키백과, “Religion in the Mongol Empire” (제국 전체에서 기독교가 차지한 미미한 자리)
- 위키백과, “Battle of Zhongdu” (1215년에 함락된 금나라의 수도)
- 위키백과, “Nawrūz (Mongol emir)” (1295년의 명령, 1297년 처형)
- 위키백과, “Qutui Khatun” (테구데르의 어머니)
- Borbone and Mikheeva, Manuscripta Orientalia (2023), 알말리크의 묘비에 관한 글
- Studia Orientalia Electronica (journal.fi), 알말리크 묘지와 시리아 문자에 관한 글
- Entangled Religions 11.6 (2020), 카슈가르와 사마르칸트 관구에 관한 글
- Halbertsma, 레이던 대학 박사논문, 옹구트 기독교 유물에 관하여 (올론 수메, 청동 십자가)
- 숙명여자대학교, 올론 수메 장례 미술에 관한 초록 (시리아어, 한자, 위구르 문자 명문)
- Case Western Reserve University, “Mining the Collection: Nestorian Crosses” (기독교와 불교의 도안)
이 편지는 영상의 조사된 대본과 출처 노트를 바탕으로 AI의 도움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정정 보내기